예전에 포스팅에서 우리나라 사람으로 월드클래스는 김연아와 조훈현 정도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잘못된 포스팅이었다. 월드클래스는 꽤 많다. “Legend”는 김연아와 조훈현 정도 밖에 없다고 수정한다. 바둑을 어렸을 적에 기원에서 배웠고, 예전에 남들 스타크래프트 할 때, 인터넷 바둑을 두던 나에게는 정말로 “클래스”가 무엇인지 보여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인상 깊었던 점은 한국 바둑의 역사와 한국 산업의 역사가 아주 쏙 빼 닮았다는 점이다. 과거, 현재, 어쩌면 미래까지.....
일본에게 기초를 전수 받고 일본의 그늘에 있다가 형식과 정석을 중요시하는 일본류의 바둑을 철저하게 실리위주의 바둑으로 박살 내면서 한국류로 세계를 제패하는 점. 또, 장고바둑의 축소로 속기바둑이 대세가 되자 사유의 근력이 부족해지면서 중국에게 서서히 패권을 빼앗기는 점. 출세하고 싶은 바둑기사들은 갑조나 을조리그에서 대국하면서 중국에서 활동해야 하는 점. 바둑랭킹 1,2,3위는 아직 한국 젊은 기사들이 잘 지켜주고 있지만 20위권에 60%넘는 기사들이 중국 기사여서 미래가 불확실하는 점. 과거, 현재, 미래까지 이토록 무섭도록 닮아있는 것이 바둑판이 삶에 자주 묘사되고,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 대박이 난 이유일까?
국수 조훈현은 최고에게 배워서 세계 챔피언이 되었고, 챔피언 일 때 이창호라는 제자를받아서 세계 챔피언으로 키워냈다. 덕분에 본인은 무관의 신세가 되었지만.....정말로 최고의 인생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조훈현 국수의 인생에서 너무 많을 것을 배웠다. 국가적 차원에서 번역본이 일본이나 중국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주절주절 서평을 썼다가 감히 고수의 생각에 누를 범하는 것 같아 서평은 아주 짧게 줄이고, 가슴과 세포를 전율시키는 고수의 생각을 소제목이라는 사족을 달아 발췌해봤다. 발췌를 통해 여러분들도 고수의 생각을 조금이나 들여다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1. 패배보다 부끄러운 것은 포기
마침내 기회가 왔다. 바둑판에 거의 빈칸이 보이지 않을 무렵에 그가 사소한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끝내기 수를 놓았다. 대국이 끝나고 계가를 해보니 나의 한 집 승.
다섯 판까지 가는구나! 다른 무엇보다 이것이 기뻤다. 패배도다 더 부끄러운 건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의 전관왕이 중국의 최고의 기사에게 비겁하게 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이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과거의 네 판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고 오직 마지막 판으로 세계 챔피언이 결정될 것이었다. 녜웨이핑 역시 나만큼이나 극도의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가 단 한 번이라도 흔들린다면, 단 한 수만 실수를 한다면...나는 그것에 희망을 걸었다.
2. 진짜 문제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바둑에서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실수도 기회도 모두 내가 만든다. 그만큼 승리는 짜릿하고 패배는 아프다. 하지만 그만큼 더 성장한다.
삶은 그 자체로 시련이다. 오로지 생각하는 힘만이 그 시련을 의미있게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그 과정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3. 인생의 정답
(세고에 선생님): 내가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답이 없는게 바둑인데 어떻게 너에게 답을 주겠느냐? 그 답은 네 스스로 찾아라.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둑이다.
4. 효율적인 학습법은 비효율적인 인생을 만드는 것인지도……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건 매우 쉽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조금이라도 공식에서 벗어난 문제가 나오면 힘을 쓰지 못한다. 반대로 혼자서 실컷 헤매본 사람은 공식 따우는 몰라도 된다. 생각을 하면서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5. 인성의 중요성
정상은 아무나 가지 못한다. 그냥 열심히 한다고 다 가는 것도 아니고 실력이 좋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운도 있어야 하지만 인성과 인품도 따라줘야 한다. 특히 마음이 강해야 한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상의 무게를 견뎌낼 만한 인성이 없으면 잠깐 올라섰다가도 떨어지게 된다.
6. 참교육 (본인은 공부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고 많이 하기를 원하는 학부모들에게…..)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똑 같은 것이 부모와 아이의 관계다. 인성 교육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보여주면 된다. 아이가 바르게 크지 않으면 그건 부모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정신이 산만하고 비상식적인 생각을 한다면 그건 부모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난한 부모는 돈이 없는 부모가 아니라 물려줄 정신세계가 없는 부모다.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정신세계야말로 자라서 사회에 나가 사람을 사귀고 직업을 갖고 가족을 꾸리고 삶의 목적을 찾는 등 일상의 모든 선택에 영향을 주는 기준이 된다. 바로 이 기준이 나쁜 유혹에 흔들릴 때 머릿속에서 “안 돼!”하고 막아주는 것이다.
7. 승패를 대하는 자세.
나는 세고에 선생님이 언제나 한결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너도 그래야 한다고 특별히 가르치신 적은 없지만,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배우게 되었다. 감정은 그저 흘러가는 덧없는 것으로, 어떤 감정도 스스로를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삶의 자세였다. 기쁨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고, 슬픔과 분노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봐야 한다. 이겼다고 우쭐해 하면 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천 번의 지는 경험을 쌓아야 하므로 일상의 경험으로 덤덤하게 바라봐야 한다.
8. 승리의 필요충분조건: 인내심
하지만 승부의 세계가 원래 그렇다. 아니, 승부를 떠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길 수 있다면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직은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승부사라면 그런 아주 낮은 가능성에도 베팅할 줄 알아야 한다. 아직 바둑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9. 진짜 강자의 모습
스스로 강한 자는 절대로 변명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지더라도 당당하다. 내가 승부에 졌다면 그건 내가 덜 강하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고 더욱 노력하면 된다.
10. 쫄지마!
승부의 첫째 조건은 뭐니뭐니해도 기백이다. 표정도 자세도 행동도 자신만만해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상대를 만났다고 해도 기가 죽지 않아야 한다. 쫄았다는 걸 들키는 순간 상대방의 기세가 등등해진다.
11. 자신감을 키우는 법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감을 기를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시험과 테스트에 도전하는 것, 수없이 면접을 보는 것,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 낯선 일에 도전하는 것, 더 어려운 업무를 수행하는 것 등, 이런 경험을 반복해야만 더 노련해지고 영리해진다. 처음에는 자꾸 실수를 저지르고 야단 맞아서 스스로 초라해지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리고 그럴수록 자신감이 추락하겠지만, 이런 경험이 반복되어야만 자신감을 쟁취할 기회, 즉 성취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수없이 져야 한다. 따라서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12. (객관적인) 멘토의 필요성: 힐링팔이 말고~
바둑 격언 중에 번외팔목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자면, 바둑판 밖에서 보면 8집이 더 유리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불안, 초조, 욕심 등으로 인해 눈앞에 있는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걸로 비유하는 말이다.
13. 꿈 vs 현실
많은 사람들은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달라서 힘들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그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면 당장 어떻게 먹고 살지 막막해서 못하겠다 한다. 이처럼 꿈과 현실사이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더 중요한 건 먹고 사는 것이다. 먼저 먹고 사는 길부터 뚫어야 한다. 50만 원이든 100만원이든 먹고 살수 있는 일부터 만든 후, 그 다음에 꿈을 꿔야 한다. 생계가 막히면 꿈이고 뭐고 없다. 치사하고 초라하게 느껴질지 모라도 그게 현실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도 다 그렇게 생계를 위해 초라고 치사하게 살면서 우리를 키워내셨다.
14. 공부하는 이유
아마 우리의 수읽기가 꼬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다른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바둑 대국에서도 이런 일은 흔하다. 아는 것이 부족해서 수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읽기는 많이 알면 알수록 유리하다. 수읽기는 직관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식이 많아야 한다.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로 지식을 많이 쌓아두어야 다양한 각도에서 판을 읽고 더 멀리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발전하는 길은 공부 밖에 없다. 프로 기사에게 공부가 바둑 교본을 읽고, 기보를 분석하고 사활문제를 열심히 푸는 것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 공부는 자기 분야에 대한 치열한 연구를 하는 동시에 세상에 대해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는 것이다.
15. 세상은 “납기”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바둑이 시간제한과 초읽기라는 공평한 틀 안에서 경쟁하는 것처럼, 세상도 시간의 제약 안에서 공평하게 싸운다.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략) 마감에 쫓길 때는 시간이 좀 더 많았으면 하고 애타게 바라겠지만, 어쨌든 기한 안에 자신의 일을 완성해야 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또한 프로라면 그 짧은 시간 안에서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자신의 분야에서 프로가 되고 싶다면 어린 시절부터 시간제한이라는 압박 속에서 많은 일을 성취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16. 실패에 대한 자세: 복기 ( =반성)
아파도 뚫어지게 바라봐야 한다. 아니 아플수록 더욱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실수는 우연이 아니다. 실수를 한다는 건 내 안에 그런 어설픔과 미숙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영원히 미숙한 어린아이 상태로 살아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정하고 바라보자. 날마다 뼈아프게 그날의 바둑을 복기하자. 그것이 나를 일에서 프로로 만들어주며, 내면적으로도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켜줄 것이다.
17. 고독: 성취의 기반
누군가 그랬다. 고독은 스스로 혼자이고자 선택하는 것이라고. 고독도 고립도 혼자 있는 상태인 것은 똑같지만, 고독은 고립과 달리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나누는 상태이기 때문에 결코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시간만은 아니라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고독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고독 속에서 자신을 떨어뜨린다. 이들은 일부러 세상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오랜 시간 홀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모든 위대한 작품, 뛰어난 실력은 고독을 통해 탄생한다. 혼자서 고민하고 사색하는 연습하는 시간 없이 어떻게 실력이 쌓일 수 있을까.
출처 : FACEBOOK 신영준